33년 전 한약값은? — 한약이야기 번외편, 1993년 봄 신문으로 본 약재값
한약이야기 번외편 · 옛날 신문 읽기
안녕하세요, 자연한의원 김주현 원장입니다.
오늘은 조금 가벼운 이야기로, 옛날 신문 한 장을 함께 넘겨 보려 합니다. 33년 전, 1993년 봄의 신문입니다.
먼저 퀴즈 하나 내 보겠습니다. 1993년 봄, 당귀 한 근은 얼마였을까요? 답은 조금 뒤에 나옵니다.
1993년 3월, 경동시장이 붐비던 날
1993년 3월 12일 서울신문 13면에는 3월 중순, 봄 보약재를 사려는 주부들의 발길로 서울 경동시장이 붐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에는 그해 시장에서 거래되던 약재값이 품목별로 적혀 있습니다.

아래 숫자는 모두 1993년 3월 서울신문 기사에 적힌 그때의 값입니다. 지금의 약재값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기사 속 약재값은 모두 '근' 단위로 적혀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이때 한 근은 600g입니다.
| 품목 | 1993년 3월 값 (서울신문 기준) |
|---|---|
| 당귀 1근 (600g) | 약 1만5천 원 |
| 황기 1근 (600g) | 2만~3만 원 |
| 달인 약(탕제) 20첩 | 6만~10만 원 |
퀴즈의 답은 약 1만5천 원이었습니다.
1년 사이에 두 배가 된 당귀
이 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값이 오른 폭입니다. 지금 읽어도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기사는 약재값이 전체적으로 한 해 전보다 10~20%쯤 올랐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당귀는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전년의 두 배쯤이 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약재값이 전체적으로 10~20% 오른 해에, 당귀는 두 배 가까이 뛰었던 셈입니다.
그때는 집에서 달였습니다
이 기사에는 약재값과 함께 집에서 약을 달이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약재를 몇 그램씩, 물을 몇 cc 붓고 얼마나 줄어들 때까지 달이는지까지 적혀 있습니다. 신문이 달이는 법까지 실어 줄 만큼, 시장에서 약재를 사 와 집에서 달이는 일이 흔했다는 뜻이겠지요.

봄이 오면 부엌 한쪽에서 약탕관이 끓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이 되면 부엌에 약탕관이 올라가고, 온 집안에 쌉싸름한 냄새가 퍼지던 풍경 말입니다. 약탕관 곁을 지키며 불을 보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시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33년 사이에 달라진 풍경
지금은 약탕관이 끓는 부엌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달인 약을 한 봉지씩 나눠 담은 파우치가 익숙해졌고, 집 안에 약 냄새가 퍼질 일도 드물어졌습니다.
그래도 옛 신문을 펼쳐 보면, 봄마다 시장이 붐비고 약재값이 신문에 실리던 그 시절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값은 달라졌어도, 봄이면 가족의 몸을 챙기려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옛 신문을 덮으며
1993년의 기사를 읽다 보면 숫자보다 그 시절 풍경이 먼저 떠오릅니다. 봄이면 시장에 사람이 몰리고, 약재값이 오르면 신문에 실리고, 집집마다 약탕관이 끓던 때였습니다.
옛 신문에는 이런 한약 이야기가 몇 편 더 남아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또 한 장씩 넘겨 보겠습니다.
약탕관과 한약 냄새에 얽힌 이야기는 한약이야기 연재에서도 이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원문 기사
- 서울신문 1993년 3월 12일 13면 — 원문 보기
- 이 글은 기사의 사실 몇 가지만 요약해 소개했습니다. 기사 문장과 지면은 옮기지 않았습니다.
※ 이 글은 옛 신문 기사와 생활사를 소개하는 글이며, 특정 약재나 치료의 효과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글 속 가격은 1993년 기사 기준이며 지금의 가격이 아닙니다.
이 글은 자연한의원 원장이 쓰고, 자료 정리에 AI 도구를 활용했습니다.